2011년 6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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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푹은 기독교에 귀의하여 우리 나라 말로 하면 간증자로 명성을 쌓는데 적어도 한 명의 영혼은 확실히 구한다. 그는 운명의 날 마을에 네이팜탄을 퍼부었던 폭격기 조종사 존 플러머였다. 명령에 따라 폭격을 감행했던 그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안 후 죄책감에 시달려 폐인이 되다시피했다. 킴푹이 그가 사는 곳 인근을 방문하여 평화를 위한 연설을 끝내고 내려올 때 플러머는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여 자신이 그날의 폭격수임을 소리 높여 외친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킴푹의 답변 "벌써 다 용서했어요.". 그것이 그들의 대화였다. 그들은 짧은 만남 후 호텔에서 재회하여 악연의 고리를 푼다.
닉 우트 기자가 사진에 붙인 제목은 <전쟁의 공포>였다. 전쟁의 공포는 네이팜의 뜨거움과 포탄의 굉음에서도 비롯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정작으로 가장 무서운 부분은 너무나도 선량하고 죄없는 사람들이 그 인간성을 접어 두고 전장에 몰두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고 죽인다는 점일 것이다. (via 1972. 6. 8. 소녀 전쟁의 공포를 울부짖다.)

김대중 납치가 실행에 옮겨질 때 "대통령의 친필 사인 없이는 못한다."고 버티기는 했다지만, 공작선 책임선상에 있던 인물의 자식이 주한 미국 대사로 온다. (via 1975. 6. 7. 유제두 세계 타이틀 획득)

'순수한' 사람들의 '혁명적 낙관주의' 덕에 보았던 피는 나일 강보다도 길고 깊게 흐른다. (via 1991. 6. 3 세계를 뒤흔든 계란)

그 서슬푸르던 시기 당대의 권력자들을 다 개새끼로 조롱한 시인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 40년 전인데, 어떻게 된 게 21세기의 한 치기 어린 대학 강사는 포스터에 그저 쥐 한 마리 그려 넣은 것으로 “포스터의 쥐 그림 자리는 국가번영을 이루겠다는 국민들과 우리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피고인은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박탈했다.”는 원대한 죄를 짓고 벌금형을 선고받더니 검찰은 그것도 형이 모자란다고 항소하고 자빠진 나라가 됐다. 6월 2일 김지하가 구속된 날, 표현의 자유를 다시 곱씹는다. 그때 오적들이 지금의 오적이고, 국민의 말과 글과 표현을 막는 적들의 수효는 오히려 늘었다. (via 1970. 6. 2 오적 필화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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