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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일 토요일

다행과 불행

박정희에 대한 특정 집단의 정서가 맹목적인 것은 확실하다.
불행인 것인 정희에 대한 향수를 딸인 근혜에게 이입시키고 있다는 것이고,
다행인 것은... 공주께서 후사가 없다는 것이다.

두환이에 대한 특정 집단의 정서가 맹목적인 부분도 있다.
다행인 것은... 이들이 생각없는 좀비라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죄에 따른 벌이라는 것을 법원만이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을 향한 특정 집단의 정서가 맹목적인 경우가 많은 것은 확실하다.
다행인 것은... 다시는 김대중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다행과 마찬가지로 다시는 김대중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특정 집단의 정서가 맹목적인 것은 확실하다.
다행인 것은 그런 사람들의 꿈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보여 줬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그들이 비주류라는 것과 추후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명바기에 대한 정서가 맹목적인 사람들도 있다.
다행인 것은 이들 대부분이 정권이 바뀌면 그를 버릴 것이라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내 조국 산하가 이미 파헤쳐져 버린 후에도 그 10bird는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중간에 빠진 태우와 영삼이는 소시민인 내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듣보잡이고, 최규하는...유령처럼 존재 자체도 희미하다. 왜냐면, 이들의 존재 자체가 저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역사에도 남아 있지 않을 녀석들이니...

하지만 진짜 불행은 내가 웬만한 정권을 다 거친 노땅 아저씨가 되어 버린 것이고,
더 큰 불행은 혹시 공주의 후사가 등장했을 때이다. ㅋㅋ

2011년 6월 18일 토요일

김대중 그리고 박정희

박지원 "박정희 아니라도 당시엔 누구나 그 정도 했을 것"
남들 말마따나 박정희가 없었어도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처럼, DJ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민주화를 향한 열정이 사그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 간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박정희는 경제 발전을 위해 국민을 담보로 꿈을 실행시키려 했고, DJ는 민주화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꿈을 이루려 했다는 것이다.
이 둘 간의 차이를 모른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단, 남에게 피해는 주면서 살지는 마라. 대부분 그렇지는 않더라만...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본문에 답이 있다.

이강래라는 아해가 YS 때문에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했단다.

물론 땡삼이 때문에 대중이가 당선 된 것은 맞을 것이다. 03이 처럼 무식하고 무능력한 녀석 때문에 대중이가 더 돋보였을 테니깐... 

그런데 지금 강래가 말한 저 발언의 속내는 DJ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믿고 살면 된다. 나는 또 나대로 믿고 살면 되니깐...)

아무튼 DJ 측에서는 강래의 말에 대해 반박을 했다. (그들도 나처럼 생각하다는 소리지. ^^)

자~ 그러면 강래가 왜 갑자기 지금에 와서 저 소리를 지껄였을까?

조중동 찌라시만 대가리 속에 구겨 넣는 좀비가 아니라면 답은 간단히 도출할 수 있다. 1차적인 답은 본문에 있거든...ㅎㅎ

그리고 시기적으로 지금 정도면 DJ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고 판단했겠지. 

DJ는 내겐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다. 그런데 2000년 4월, 16대 총선 때 DJ가 내게 공천을 주지 않아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via “YS가 중립지켜 DJ 당선” joongang.joinsmsn.com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면 당신 담임이 당신에게 했던 소리를 되새겨라. "이 돌대가리 나가 죽어라"

Posted from posterous

2010년 9월 13일 월요일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에 듣는다

박지원이 이 양반이 왜 DJ정부의 2인자였는지를 요즘 행보를 보면 알 수가 있더라. 꽤~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지금 민주당 얼라들은 너무 허접한 놈들 뿐이거덩...그리고 인터뷰 중에 내가 싫어하는 03이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물론 전에도 박지원에게 03이가 지껄인 내용도 있고...ㅎㅎ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에 둘이 화해했다고 했는데, 진정 화해한 것인가.

- 난 안 했다고 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맘대로 혼자 말씀하시고, 나중에는 곧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았나.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에도 화해 분위기는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늘 사람을 보내 ‘내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게 아니라고 DJ가 공식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럼 누가 환란의 주인공인가. 세상 살면서 다 화해하고 살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지. 화해를 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한 뒤 더 이상 말(비난)을 안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난한 적 있나.
봐라 03아 니 혼자만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우기기 말라니깐...

2010년 8월 7일 토요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중에서

김 전 대통령이 끝까지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보인다.
via 출판계에 부는 김대중 자서전 돌풍 중에서...
그런데 03이 이 녀석은 뭐라고 했냐면...
YS "DJ와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라고 했거덩.

봐라. 03아...그건 니 생각일 뿐이라니깐...

2010년 2월 2일 화요일

누가 현충원 내에서 불장난을 했을까?

아직도 DJ라는 label을 붙여야 하는 일이 생겼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어젯 밤 불

마치 횃불놀이 흔적처럼 불이 났던 흔적은 있다.
일단 의도적으로 묘에 불을 질렀다면 3대가 빌어먹을 놈이다. 아니 자손 대대로 빌어먹을 놈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용자가 현충원 내에서 불을 지를 생각을 했을까?
혹시 짜깁기 인터뷰와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아니...생각해 보니 아래 분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덧.불 붙이려는 시도를 했구나.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zooins.blogspot.com/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추모 배너를 보다가 문득...그의 명복을 빌고 싶어졌다.
Posted from wenjun’s posterous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정부, 김대중 평화센터 '주의 조치'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측이 북에 부고를 보낸 뒤 사후에 신고를 했고 재발 방지를 다짐한 만큼 법적으로 더이상 문제삼지 않고 주의 조치에 그쳤다

주의 조치만 해줘서 고맙고, 너의 관대함에 눈물이 흐른다. 이 10 bird들아.

삽의 용도

http://handosa.egloos.com/1940976
via kwout

孟子 曰,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천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 연설문 가운데 (20001210)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Incarnation :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을 화합과 통합의 계기로 삼자구요?

화해는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시킨다고 해서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시킨다고 해서 억지로 시늉하는 건 화해가 아니라 국민대통합 정치쇼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거짓의 어둠이 걷히고 진실의 여명이 동터오면 절로 이루어지게 돼 있습니다. 언론이 시시비비를 분명히 하고 사실을 보도하기만 하면 절로 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위정자가 김 전 대통령처럼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면 저절로 꽃피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추모 분위기 깨지 말고, "쉿~!"

두환아, 땡삼아, 2mb야 니들 들으라고 한 소리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똥기리 당신도...

옛날의 동지 좋아하네...니가 언제?
그리고 이제는 당신도 그만 입 닥칠 때 되지 않았나?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이것이 대한민국 수구꼴통과 일본 보수와의 공통점이다.

일본 내 보수성향 유력지 산께이(産經) 신문 인터넷판은 20일 구로다 가츠히로(黑田勝弘) 기자의 칼럼을 통해 '국장'을 둘러싼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억지 주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왜 쪽바리 너희들이 감놔라 대추놔라 지랄이야? 그리고 그 쪽바리들 애널써킹하는 놈들은 뭐고? 애널써커들 잘 생각해 봐라. 니들 주장과 쪽바리들 주장이 뭐가 다른지...하긴 니들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만...ㅉㅉㅉ

그러고 보니...DJ의 국장을 가지고 좆깝제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여기 그리고 저기

1992년 겨울, 중국집의 추억 [추모]

읽어 볼 것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여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가슴에 확~ 와 닿는 멋진 말이군요.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2009 시즌 :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공부 도전기 - 마케터의 블로그스타

나는 마흔 여덟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1972년 유신이 선포되기까지 10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외국의 공관 사람들이나 외신 기자들을 만나는 일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어를 배워야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실천에 옮겨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의지는 있었는데, 끈기 있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1972년까지 그런 꼴이었습니다.

76년과 80년에, 두번에 걸쳐서 있었던 5년 간의 옥중 생활은 영어 실력을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영어책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영문법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그 결과 상당한 문법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흑자들은 문법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물론 회화를 못 하는 문법이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화를 유창하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나의 경우 회화는 그렇게 유창하지 못 하지만, 문법 공부를 제대로 한 결과 외국인들도 나의 영어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문법에 약합니다. 뒤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들 앞에서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면 그 사람의 `품위'까지 올라간다는 겁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으로부터 죽을 위협을 당하는 등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나를 두번이나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도 못 했을 것이고, 영어 공부도 잘 하지 못했 것입니다. 밖에 있었다면 너무 바빠서 학문이나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 했을 텐데, 그들이 나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사람에게는 모두가 나쁜 일도 없고, 좋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절실해집니다.

19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미국의 ABC, NBC, 퍼블릭 라디오를 위시한 각 지방의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였습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고 듣는 일이 가능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방송에서 직접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방송 출연과 관련하여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1983년 10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은 인권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수 있느냐는 비판 여론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고, 상당수의 의원들도 레이건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반대하는 서명을 하여 이를 백악관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레이건의 방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ABC Nightline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교섭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매우 주저하였습니다. 나이트라인은 관심 사가 방영될 경우,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이 시청한다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의 진행자인 테드 카플은 미국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이 프로그램에 등장시켜 놓고 종횡무진으로 질문들을 퍼붓고 허점을 찌르고 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 이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면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는 주위의 사람들의 강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서 미국의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내 특유의 위기 관리 능력을 믿고 한번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참 용감하게도 출연을 수락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같은 방송에서 얼마 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행했던 장면을 떠 올렸습니다. 마르코스는 그 해의 여름에 아키노 상원의원이 필리핀 공항에서 살해당한 일과 관련해 나이트라인에 불려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고 조리정연했던지 독재자라고 미워하던 사람들까지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화 도중 테드 카플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할 때 그가 취한 태도였습니다. 그는 단호한 태도로 "Wait ! Wait!" 하면서 자기가 할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미워했지만, 역시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기회가 있으면 저렇게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며 "미스터 카플, Wait! Wait!"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카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은 시종 내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토론이 종료되어 갈 무렵에 이르자 여당(민정당)대표가 거짓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씨가 말한 인권 유린은 박정희 때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모든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인권 유린도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반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자인 테드 카플이 거기서 토론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시청자들은 그 여당 간부가 한 말만 믿고 텔레비전 앞을 떠날 것이고, 결국 이제까지 내가 해온 말들은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미스터 카플!"을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에 쫓기는 듯 나의 요청을 듣지 않고 프로를 마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미스터 카플!"

그러자 그는 간단히 하라고 주문하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론 길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간단히 말했습니다.

"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인권 유린에 관해 내가 한 말들은 나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국제사면위의 82년도 보고서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부의 미국 국무성 82년도 인권 보고서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네 정부가 보증합니다."

집에 돌아오자 미국 전역에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들 축하를 하며, 영어로 하는 나의 토론 능력에 놀랐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습니다. 사실은 그날 밤에 미국 내에 있는 한국의 각 공관에서 교민들에게 나이트라인을 꼭 보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어도 잘 하지 못 하는 내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는 두 사람에게 묵사발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Wait! Wait!"하는 장면이 좋았다고 하면서 테드 카플을 그렇게 눌러 버리다니 놀랍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말하면서 마르코스에게서 배웠다고 하자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나와 가장 절친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을 살해한 독재자에게 배웠다니 웃음을 터뜨릴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그렇게 영어로 말을 잘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영어를 잘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것은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최고의 웅변입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한 가지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ABC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을 방영해 온 한국의 AFKN이 그날 프로그램만 방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 국방부의 성명이 "우방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은 방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실패했다면 그 프로그램은 그대로 방영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미국 하원의원들이 이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영어를 익혀 왔습니다. 나는 미국에 있는 2년여 동안 약 100회 정도의 강연을 미국 사람들 앞에서 했습니다. 영어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친근해졌습니다. 나의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나의 영어도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의 영어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80년대에 미국에 있을 때는 미리 작성한 연설문을 낭독하고, 답변은 통역과 내가 번갈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카터 대통령, 키신저 씨 등 많은 지도자들을 만났고, 미국인들 앞에서 연설을 약 10여 차례 했는데,이제는 연설문을 낭독하는 대신 연설문의 요지를 영문으로 만들어서 배부해 준 뒤, 내가 직접 말하고 또 질문에 답변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어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특히 듣기에 약합니다. 나는 이것을 극복하려고 지금도 계속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봄, 영국에 있을 때도 양복 윗주머니에 항상 얇은 라디오를 꽂아 두고 틈나는 대로 들었습니다. TV도 매일 2시간씩 시청을 했습니다. 듣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계속하면 듣기의 문제도 극복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만이 영어, 특히 회화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영어는 한국어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영어가 세계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 나가려면 모두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반드시 이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크게 후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대학 공부도 못 했고, 또 50살이 다 되도록 전혀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사람도 열심히 노력했더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등 제 2외국어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

그가 받은 노벨상을 이제야 봤다. - Nobel Diploma

노벨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겼구나.

The Nobel Peace Prize 2000

어떤 이들은 노벨 평화상을 로비를 하고 돈을 주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더라.

(http://tinyurl.com/lalxuy)